병아리를 지키던 봄날의 약속

“꼬꼬댁, 꼬꼬…!”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 집 늙은 암탉은 온 힘을 다해 알을 낳고는 세상을 향해 자랑을 한다. 그 소리가 들리면 어디선가 장닭이 나타나 암탉을 뒤뜰로 데리고 간다. 아직 얼음기가 남아 있는 텃밭을 억센 발가락으로 뒤집으며 먹이를 찾고, 암탉에게 조심스레 내미는 것이다. “꾸꾸구구…!” 서로 위로하고 다독이는 그 소리는 어린 내 귀에도 정겹게 들린다. 암탉이 둥지를 비우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 짚으로 엮은 둥지로 달려간다. 노루발로 조심조심 올라가 닭똥 묻은 달걀 옆에 놓인 금방 낳은 알을 집어 든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따뜻함은 이상하게도 마음까지 데워 준다. 혹여 식을까 바쁘게 아버지께 가져다드린다. 아버지는 달걀을 생으로 드시곤 하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상자에 고이 모아 두신다. 다섯 개, 열 개, 스무 개…. 달걀이 스무 개쯤 모일때쯤이면 암탉은 둥지에서 내려오지 않고 알을 품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모아 둔 달걀을 둥지에 넣어주신다. 하루에 한 번 먹이를 먹으러 잠깐 내려오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알을 굴리며 꼬박 스무날을 견딘다. 그리고 하루가 더 지나면 둥지 안에서 작은 기적이 시작된다. “삐악, 삐악!” 노랗고 눈이 동그란 병아리들이 껍질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다. 엄마 닭을 졸졸 따라다니며 먹이를 쪼아먹는 모습은 정말 사랑스럽다. 병아리가 태어나는 때는 늘 3월쯤이었고, 그때부터 나에게는 중요한 임무가 주어진다. 병아리를 지키는 일이다.

손에 작은 막대기 하나와 돌 몇 개를 들고 하루 종일 병아리들을 따라다니며 지킨다. 순식간에 나타나 병아리를 채어 가는 소리개가 가장 무서운 적이다. 아무리 막대기를 휘두르고 돌을 던져도 몇 마리의 병아리는 사라지기가 십상이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엄마 닭의 모성애는 놀랍다. 시커먼 그림자가 어른거리기만 해도 혼비백산 하면서 병아리들을 품으로 불러들여 보호한다. 자기 몸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직 병아리만을 걱정한다. 나는 심심풀이로 돌을 던져 그 반응을 보기도 하며 즐기는데, 지금 생각하면 간이 떨어질 정도로 놀랐을 엄마닭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런 그림자도 없었는데 엄마 닭이 갑자기 병아리들을 끌어안았다. 순간, 소리개 한 마리가 하늘에서 땅으로 곤두박질치며 내려와 병아리 한 마리를 낚아채 가 버렸다. 어디로 간 것인지도 모른 채 오직 병아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나는 정신없이 소리개의 그림자를 쫓아갔다.

그때, 어디선가 까치 떼가 몰려들어 소리개를 공격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리로, 저리로 떨어졌다가 다시 솟구치는 소리개를 까치들이 끝까지 따라붙었다. 나는 숨이 차오르는 것도 잊고 박수와 응원을 보내며 그 쪽을 향해 달렸다. 머릿속에는 아버지의 화나신 얼굴만 떠오른다. 아버지는 하늘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의 말은 곧 법이었고, 병아리를 지키라는 말씀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나의 의무였던 것이다. 기적처럼 소리개의 발에서 병아리가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까치들이 병아리를 번갈아 물고 보호하며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역시 까치는 좋은 새야.’ 주변을 한참 동안 찾아 헤맨 끝에 발견한 흔적은 흩어진 노란 병아리의 깃털뿐이었다. 병아리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 어른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까치도 육식을 한다는 사실을. 그날의 병아리 깃털은 까치가 병아리를 먹고 남긴 흔적이었다는 것을. 배신감이 들었지만, 어른들이 왜 까치를 ‘좋은 새’라고 부르는지에 대해 이해하고는 마음이 풀렸다. 아이들이 까치를 쓸데없이 해치지 않도록, 그리고 그 외의 자연들도 철없는 아이들로부터 지키기 위한 조상님들의 지혜였던 것이다. 사마귀를 잡으면 온몸에 사마귀가 돋는다는 이야기나 마을 앞 느티나무에 오르면 부모님이 화를 입는다는 소문도 모두 같은 이유였다. 지켜야 하는 것에 대해 아이들에게 엄하게 가르치거나 강요하지 않고 경외심을 가지게 하여 자연스럽게 지킬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봄날, 나는 병아리를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자연이 얼마나 냉정하면서도 질서 있는지, 그리고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존중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웠다. 요즈음도 봄이 오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삐악!” 소리와 함께 그때의 하루가 조용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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