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산궁 앞에 선 필자)
얼마 전 일본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교토는 일본의 옛 수도였고, 한국의 경주와 비슷한 고도(古都)입니다. 골목마다 역사가 흐르고 오래된 사원과 신사가 도시를 지탱하고 있어 좋고 왠지모를 묘한 익숙함마저 느끼게 됩니다. 아마도 한국의 경주를 연상시키는 고도(古都)의 풍경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옛 에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교토 곳곳에는 의외로 한국과 연결된 자취가 많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그 중 하나가 [코류지]라는 사원에 있는 일본의 국보 1호 [미륵보살상]이 사실은 신라인이 만든 것이라는 유력한 학설입니다. 물론 일본에서는 그것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고찰인 코류지(광륭사)는 603년에 건립된 사원으로 일본 국보 1호로 지정된 [미륵보살상]이 모셔져 있는데 비전문가가 보아도 일본의 전통 양식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이 신라인에 의해 제작되어 옮겨졌다는 설이 유력하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불상은 일본 불상에서 보기 어려운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일본 불상은 대개 [스기나무]를 재료로 하여 머리 몸통 등 부분을 따로 조각해 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이 미륵보살은 한국에만 자생하는 붉은 소나무를 사용하여 통나무 하나를 통째로 조각된 작품입니다. 또한 얼굴에 머금은 신비로운 미소는 일본의 불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서입니다. 한국인에게는 친숙하고 따뜻하게 다가오며 그 친근함에 한 유학생이 참지 못하고 끌어안았다가 불상의 손가락이 부러졌다는 일화까지 전해집니다.

(일본의 국보1호인 미륵보살-코류지)
시대적 배경을 떠올려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삼국 시대의 백제, 가야, 신라인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활발히 문화를 전수했습니다. 호류사 금당벽화를 그린 고구려 화가 담징의 예처럼 일본의 국보 속에는 우리 문화의 흔적이 배어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일본 국보 1호 미륵보살이 신라의 솜씨라는 설은 더없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단지 하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미륵보살 주변에 늘어선 지옥사자상들을 바라보면서도 그것이 한국에서 건너간 작품이거나 일제강점기에 강탈된 것은 아닐까 하는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일본이 선뜻 문화재 발굴을 주저하는 이유 또한 그 속에서 한국의 문화 흔적이 쏟아져 나올까 두려워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해 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런 사실들에 대해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연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많은 문화재가 우리 땅에서 빼앗겨 일본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더 마음이 아픈 것은 다른 나라가 소중히 보관하는 우리 문화유산조차 정작 우리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역사를 아는 일은 단순히 옛날 일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알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를 아는 길입니다. 교토의 미륵보살을 보고 있으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너희가 너희 것을 지켜라. 그래야 미래도 지킬 수 있다.]

(담징이 그린 호류사 금당벽화)
교토 주변에는 귀무덤, 적산궁 등 한국과 관련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특히 장보고는 일본 상인들에게 ‘재물신’으로 추앙받아 지금도 신사에 모셔져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찾아와 재물운을 비는 풍경은 아이러니까지 합니다. 이처럼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떠올릴 때, 정작 우리에게 가까운 것은 문화적 뿌리입니다. 반대로 멀게 만든 것은 오늘날의 배타적 감정입니다. 역사의 진실은 감출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것의 가치를 먼저 알고, 소중히 보살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타국의 국보 속에서도 우리 얼이 살아 숨 쉬고 있다면 우리는 마음에서 그것을 잘 지켜내야 합니다. [우리 것을 잘 알고 보살피는 일]은 과거의 유산을 넘어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뿌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우리의 문화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을까요? 우리의 것을 잘 알고, 제대로 보살피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세계 속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것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길 때 더 넓은 세상 속에서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 것을 배우고 지키는 주인공이 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