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나의 한글
아침부터 흐리던 하늘이 기어이 비를 쏟아낸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문득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누구나 비밀을 가지고 살겠지만 나도 가슴 한켠에 열쇠를 걸어둔 비밀의 방이 있다. 식상할 지 모르지만 첫사랑의 기억, 가슴이 터질 듯 뛰던 소년 시절의 비밀 이야기이다. 시골 중학교 시절, 8킬로미터의 등굣길은 고단했지만 그 아이를 마주칠 수 있다는 설렘 하나로 날마다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으로 학교를 다녔다. 글짓기부에 들어간 것도 글이 좋아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 아이를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였다. 어린 마음은 그렇게 글과 첫사랑을 한 줄로 묶었다. 그러나 비 내리던 어느 날, 남겨진 쪽지 한 장과 함께 그 아이는 내 곁을 떠나버렸다. 나는 세상의 빛을 잃은 듯 방황했지만, 다시 일어서게 한 것은 글쓰기였고, 지금은 교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한글과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그 아이가 일본에 산다는 소식이 있어 나는 일본으로 오게 되었다. 사람들은 왜 안정된 교직을 그만 두고 고생길을 택하느냐고 만류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한 번은 꼭 그 아이를 만나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내가 마주한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냉혹했다. 방 한 칸을 얻기 위해 몇 달 치 집세를 선불로 내야 했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거절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낯선 땅에서 나를 버티게 한 힘은 언제나 ‘한글’이었다. 낮에는 아이들에게, 밤에는 어른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재일동포 2세, 3세 아이들이 일본 이름을 쓰며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아픔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그들에게 한글은 단순한 문자 이상의 의미였다. 잃어버린 뿌리를 되찾는 길이었고, 세상 앞에서 당당히 설 수 있는 용기의 근원이기도 했다.

한 명의 제자에게서 시작된 가르침은 점점 넓어졌다. 20여 명이던 토요학교(한글학교)는 백 명 이상으로 늘어났고, 여름이면 ‘한글 캠프’를 열어 아이들에게 모국의 문화와 역사를 심어주었다. 탈북 청소년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은 재외동포재단(재외동포지원센터의 전신)의 모범 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일본 전국의 한글학교를 묶어내는 ‘재일본한글학교협의회’ 도 창립했으며, 나는 일본 곳곳에 한글의 씨앗을 심는 일에 앞장섰다. 돌이켜보면, 중학교 시절 그 아이를 향한 설익은 열정이 나를 글로 이끌었고, 글은 다시 한글로, 또 다시 민족교육의 길로 인도했다. 한글은 나의 삶의 중심이자 나의 사명으로 자리 잡았다.

세월의 흐름속에 소망이 이루어져, 기적처럼 나는 그 때의 그 아이와 다시 마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20여 년의 간극은 너무도 컸다. 서로 눈물만 흘리다 이내 멀어지고 말았다. 지금도 가끔은 그 빈자리가 가슴을 저민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그 아이가 내게 남겨준 것은 ‘사랑의 아픔’만이 아니라 ‘글을 통한 삶의 방향’이었다는 것을. 지금도 스승의 날이면 제자들이 보내오는 편지와 카드에서 나는 가르침의 보람을 느낀다. 누군가는 한글을 배워 인권 변호사가 되었고, 누군가는 방송국에서 한국을 알리는 아나운서가 되었다. 그들의 삶 속에 한글은 뿌리처럼 자리하고 나는 그 곁에서 작은 거름이 되었음을 감사한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 빗소리 사이로 고향의 들녘과 중학교 교실 창가가 떠오른다. 그리고 한글과 함께 걸어온 나의 길이 겹쳐진다. 한글은 나를 키워준 스승이었고, 나를 세상과 이어준 다리였다. 앞으로의 내 인생 역시 한글과 함께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온 길이자, 앞으로도 지켜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