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침략전쟁과 그 이면의 프로파간다 전략
100년 전, 일본 제국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숱한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들은 일본 정부와 군부의 결정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전쟁을 위한 군사비 예산이 승인되고, 국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전쟁이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일본 국민 역시 전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간 ‘제국 일본의 프로파간다’의 저자 기시 도시히코는 일본 국민들이 전쟁을 지지하게 된 배경에 대해 “정부, 군부, 언론이 주도적으로 전쟁 열기를 부추긴 결과”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동아시아의 그림 자료를 20년 동안 연구해 온 학자로, 이번 책을 통해 일본 제국이 대중을 어떻게 선동했는지를 학문적으로 조명한다. 책에서 다루는 핵심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사용한 프로파간다 전략이다. 프로파간다는 특정 이념과 사고를 사람들에게 주입하는 일종의 심리적 전술로, 일본은 이를 철저하게 활용했다.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사용된 ‘니시키에’와 사진
청일전쟁 당시 일본의 프로파간다의 핵심은 ‘니시키에(錦絵)’였다. 니시키에는 에도 시대에 확립된 일본식 판화로, 일본은 전쟁이 벌어지는 현장에 ‘화보대’를 파견해 전쟁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 그림들은 대량으로 발행되어 일본 전역에 퍼졌고, 전쟁을 미화한 내용 덕분에 국민들의 전쟁 지지에 기여했다. 깃발이 휘날리는 장면 속에서 아군이 대승리를 거두는 장면은 국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판매상들은 그로 인해 큰 이득을 보았다.
러일전쟁에 들어서면서 프로파간다는 또 다른 형태로 발전했다. 판화 대신 사진이 주요 매체로 자리 잡은 것이다. 예를 들어, 1904년 9월 30일자 도쿄 아사히 신문에는 종군기자가 촬영한 사진이 실렸으며, 이 사진들은 때로는 일본군의 패배를 승리로 둔갑시키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이러한 조작된 사진들은 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열광을 더욱 고조시켰다.
영화와 박람회로 이어진 프로파간다의 절정
중일전쟁 시기에는 프로파간다가 절정을 이뤘다. 이 시기 일본은 영화를 대대적으로 활용해 전쟁을 미화했다. 전쟁 자체가 일본 국민에게는 일종의 “화려한 볼거리”로 제공되었고, 영화 제작사들은 군사 영화를 제작하는 데 몰두했다. 특히 1937년의 루거우차오 사건 이후, 일본 전역에서 군사 영화가 넘쳐났으며, 이는 일본 국민들의 전쟁에 대한 지지를 더욱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전쟁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쟁사진 박람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1937년부터 1939년 사이에만도 박람회는 거의 매달 열렸고, 참가자들은 실제 전쟁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형 파빌리온’에도 열광했다. 이러한 박람회는 국민들이 전쟁을 ‘성전(聖戰)’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대의 전쟁에도 반복되는 프로파간다
이 책은 단순히 100년 전 일본 제국의 사례만을 다루지 않는다. 저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중동 정세 등 현대의 전쟁들에서도 여전히 프로파간다 전략이 사용되고 있음을 경고한다. 특히 전쟁이 만들어내는 ‘전승(戰勝) 신화’가 시민들의 집단적 기억에 작용하여 전쟁을 정당화하고 부추기는 위험성을 강조한다.
기시 도시히코는 이러한 프로파간다가 단순히 과거의 문제가 아니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쟁을 지지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 책은 일본 제국의 사례를 통해 현대의 전쟁에서도 프로파간다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경각심 있게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