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했던 친구, 누렁이

나는 오늘도 우리 집 누렁이와 함께 외출을 합니다. 누렁이는 내가 타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영리하고 순한 우리집 소입니다. 어린 시절, 나는 누렁이와 함께 들판으로 자주 나가곤 했습니다. 소꼴을 한 소쿠리 채우고 나면, 경치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립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하이디와 할아버지, 클라라, 목동 피터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곤 했습니다. 하이디와 친구가 된 클라라가 점차 밝아지고, 결국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되는 이야기는 내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합니다. 그림을 그리다 잠이 들면 누렁이는 묵묵히 제 곁을 지키며 기다려 줍니다. 내가 오랜 시간 자고 있으면 누렁이는 ‘음메! 음메! 울음소리로 집으로 돌아가자고 알려주곤 합니다. 나는 그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곤 했습니다. 우리는 말이 없더라도 눈빛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특별한 관계였습니다. 내가 지시를 하면 누렁이는 그것을 알아듣고 틀림없이 행동으로 옮깁니다. 누렁이가 집으로 돌아가자고 신호를 보내면 나는 누렁이 등에 올라타 즐겁게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누렁이는 언제나 나에게 즐거움과 안정을 주는 존재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매일 누렁이 등을 타고 다녔습니다. 가끔씩 중심을 잃어 누렁이 발밑으로 떨어질 때도 있지만 누렁이는 절대로 나를 밟지 않고 발을 재빠르게 옮겨 위험에서 나를 보호해 줍니다. 누렁이는 나의 유년 시절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내가 철이 들고 우리 가족이 농사를 그만두게 되었을 때까지 누렁이는 항상 나와 함께였습니다. 누렁이와 헤어지던 날 나는 많이도 울었습니다.

시골의 여름날 오후는 조용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낮잠을 즐기지만, 나는 강가로 나가 재첩을 줍거나 물고기를 잡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낙동강과 위수강이 만나는 삼각주의 넓은 모래밭 햇볕 아래서 뛰어다니고, 포플러 숲의 시원한 물을 마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모래밭에는 황새와 두루미들이 재첩을 잡기 위해 모여들었고, 그러다 수 백마리가 한꺼번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입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시골의 정오는 언제나 특별합니다. 정막에 둘러싸인 시골 마을은 고요 속에서도 숨을 쉬고 있습니다. 세상 모두가 깊은 낮잠에 빠져 있지만 매미는 짝을 찾아 울음을 토해냅니다. 나 또한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강 너머로 향합니다. 위수강 너머에는 모래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부신 모래밭은 마치 신기루 같습니다. 그 모래밭 끝에는 포플러 병정들이 늘어선 작은 옹달샘이 있습니다. 그 속에는 모래무지가 고요히 쉬고 있고, 재첩은 지친 듯 작은 숨구멍으로 거친 호흡을 토해냅니다. 수 백 마리의 두루미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사냥을 합니다. 모래밭 가장자리에는 작은 자연의 선물들이 숨어 있습니다. 털복숭아처럼 작은 참외, 그늘 속에 숨어 있는 조그만 수박 그리고 까칠한 천도복숭아가 그들입니다. 더위에 지친 땅콩잎들은 널브러져 무심한 듯 주변을 바라보며 고요를 즐깁니다. 나는 그 과일과 채소들을 찾으며 여름날의 호기심을 채우곤 했습니다. 잡히지도 않는 황새를 따라가기도 하고 모래 속에 숨어있는 모래무지를 쫓기도 합니다. 이런 놀이가 지루해지면 달구어진 모래밭을 달립니다. 혼자여도 상관없습니다. 모든 자연이 나의 친구였으니까요. 모래밭, 포플러 숲 그리고 강물까지 모두가 나와 놀아주는 소중한 친구들이었습니다. 세상이 멈춘 듯한 그 시간, 멀리서 들려오는 누렁이의 기지개 소리가 정막을 깨며 정오의 끝을 알립니다. 그 소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자연의 신호입니다. 이때쯤이면 아버지께서는 막걸리 한 주전자를 부탁하시며 일터로 나가십니다. 정오의 고요를 깨는 또 하나의 나의 일상입니다. 나는 조금 뒤 부탁한 막걸리를 사 들고 누렁이와 일터로 향합니다. 가다가 목이 마르면 막걸리를 조금씩 마시기도 했고, 부족한 양은 시원한 계곡물로 채우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마신 것을 알고 계시지만 아무 말씀 없이 받아주시곤 하셨습니다.

이 모든 기억들은 단순한 과거의 한 장면이 아닙니다. 자연 속에서의 놀이와 교감 그리고 소소한 일상이 주는 평화는 오늘날까지도 나를 위로하고 이끌어주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바쁘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그 시절의 정오처럼 잠시 멈추고 고요 속에 자신을 맡기는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골의 정오가 주었던 그 느림과 평화는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소중한 가르침임을 다시금 느껴봅니다. 누렁이와 함께했던 유년 시절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오늘처럼 무더운 여름날이면 그 시간들이 더욱 간절히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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