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해 챙겨 먹은 과일이 오히려 혈당과 중성지방을 높일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과일에 들어 있는 과당이 간에서 지방 합성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일을 설탕이나 액상과당과 같은 위험 식품으로 취급하는 것도 과학적 근거와 거리가 있다. 과당의 ‘배신’은 과일 자체보다 섭취량과 가공 방식에서 시작된다.
과당은 포도당과 같은 단당류지만 체내 처리 과정은 다르다. 포도당은 여러 조직에서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반면 과당은 대부분 간에서 대사된다. 한꺼번에 많은 양이 들어오면 일부가 지방으로 전환돼 중성지방 증가와 지방간, 인슐린 저항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과당이 기존 식사에 추가돼 총열량을 높일 때 문제가 커진다. 통제된 임상시험을 종합한 연구에서는 과당을 같은 열량의 다른 탄수화물과 바꿨을 때 혈중 지질에 뚜렷한 악영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과당으로 열량을 과잉 섭취한 경우 중성지방과 아포지단백B가 증가했다. 과당이라는 성분 하나만큼이나 전체 섭취 열량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통째로 먹는 생과일에는 이런 위험을 줄이는 장치가 있다. 과육과 껍질의 식이섬유가 소화와 흡수 속도를 늦추고 포만감을 높인다. 수분과 비타민, 미네랄, 폴리페놀 등도 함께 섭취한다. 사과 한 개를 씹어 먹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주스 한 잔은 몇 분 안에 마실 수 있다는 차이다.
과일주스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착즙 과정에서 식이섬유가 대부분 제거되고 여러 개의 과일에 해당하는 당을 짧은 시간에 섭취하게 된다. 세계보건기구는 생과일 속 당을 제한 대상인 유리당에서 제외하지만 과일주스와 농축액에 들어 있는 당은 유리당으로 분류한다. 유리당 섭취는 하루 총열량의 10% 미만, 가능하면 5% 미만으로 줄일 것을 권고하고 있다.
‘무가당 100% 주스’라는 표시도 당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제조 과정에서 설탕을 추가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뿐 과일에서 나온 당은 그대로 남아 있다. 탄산음료보다 비타민 등 일부 영양소가 들어 있지만 혈당과 열량 측면에서 물처럼 마실 수 있는 음료는 아니다.
장기간 관찰 연구에서도 통과일과 과일주스의 차이가 확인됐다. 통과일 섭취가 많을수록 제2형 당뇨병 위험이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난 반면 과일주스 섭취 증가는 당뇨병 위험 상승과 연관됐다. 미국당뇨병학회의 2026년 진료 기준도 당뇨병과 당뇨병 전 단계 식사에 통과일을 포함하되 가당 음료와 초가공식품은 최소화하도록 권고한다.
말린 과일도 주의가 필요하다. 수분이 빠지면서 부피가 줄어 같은 무게에 당과 열량이 농축된다. 생포도 한 송이를 먹는 것보다 건포도를 훨씬 빠르고 많이 먹기 쉽다. 설탕이나 시럽까지 첨가된 제품은 과일이라기보다 당류 간식에 가까워진다.
스무디는 착즙주스보다 식이섬유가 남지만 통과일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잘게 분쇄돼 빠르게 마실 수 있고 바나나, 망고, 꿀, 시럽, 아이스크림 등을 함께 넣으면 한 잔의 열량이 식사 수준으로 올라간다. 건강식이라는 인식 때문에 섭취량을 경계하지 않는 것이 함정이다.
과일의 종류보다 양과 형태가 더 중요하다. 혈당 관리가 필요한 사람은 한 번에 여러 종류를 큰 접시로 먹기보다 적당량을 나눠 먹는 편이 낫다. 주스 대신 통과일을 선택하고 과일 통조림은 시럽 제품보다 물이나 무가당 과즙 제품을 고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일을 식사 뒤에 무제한으로 추가하면 건강식도 결국 과잉 열량이 된다.
과일의 과당은 그 자체로 배신자가 아니다. 과일에서 식이섬유를 제거하고 농축해 음료와 가공식품으로 만들거나 건강식이라는 이유로 과식할 때 문제가 나타난다. 경계해야 할 것은 과일 한 조각이 아니라 과일을 설탕물처럼 소비하게 만든 식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