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속에서 찾는 한국인의 길

해외에서 겪은 작은 경험 하나가 사회의 단면을 되새기게 한다. 영국 잉글랜드에서 스코틀랜드로 향하던 기차가 종착역을 불과 눈앞에 두고 세 시간 가까이 멈춰 선 일이 있었다. 안내방송 한 번이 전부였지만 승객들은 항의하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기다림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드러난 장면이었다.

나는 현재 일본에서 20여 년을 살고 있는데 일본 사회는 사소한 사건에도 장기간 사회 전체가 요동치는 경향이다. 어린이 익사 사고나 엘리베이터 사고, 정전 사태 등이라도 발생하면 언론과 시민들은 오랜 기간 동안 그 사건에 집중하며 관련자들은 연이어 사죄하고 재발 방지책이 끝없이 논의된다. 학교 현장 또한 마찬가지다. 학생의 사소한 일탈조차 끝까지 추궁하며 규범을 고치도록 압박한다. 겉으로는 질서와 철저함이 돋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억눌린 감정과 피로가 켜켜이 쌓인다.

유럽인의 느긋한 인내와 일본인의 집요한 질서.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세계인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흔히 ‘냄비 근성’이라 불리는 단기적 열정, 그러나 동시에 위기 앞에서 놀라운 단합을 보여온 경험, 그리고 때로는 제각각 움직이는 제멋대로의 모습까지 다양한 평가가 뒤섞여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한국인은 지난 세대에 걸쳐 전쟁, 분단, 가난, 재난을 이겨내며 누구보다 강한 회복력을 증명했다는 점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순식간에 힘을 모으고, 절망을 기적으로 바꾸어낸 경험은 우리의 가장 큰 자산이다. 이는 ‘냄비 근성’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발휘되는 생명력이며, 앞으로도 국가적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원천이다. 다만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하기 위해서는 보완해야 할 점도 있다. 쉽게 흥분하고 금세 잊는 경향, 제도보다 감정에 치우치는 문화, 즉흥적 대응에 의존하는 습관은 한계를 드러낸다. 이러한 특성을 창의성과 융통성으로 발전시키고, 동시에 인내와 규범 존중의 미덕을 보완해야 한다.

삶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멈춤을 맞이한다. 그 순간을 어떻게 견디고, 어떤 태도로 극복하느냐가 한 사회의 품격을 결정한다. 한국 사회는 위기 순간마다 보여준 뜨거운 단합을 일상적 성숙으로 확장해야 한다. 뜨거울 때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멈춰야 할 때는 담대히 기다리며, 위기 앞에서는 하나로 뭉쳐 다시 일어서는 힘. 이것이야말로 한국이 세계 속에서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경쟁력이자, 미래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정신이다.

멈춤의 순간은 패배가 아니라 성찰의 기회다. 이제 한국 사회가 필요한 것은 단기적 열정과 즉흥을 넘어, 깊이 있는 인내와 질서 속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일이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한국인다운 길을 세계 앞에 당당히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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