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영칼럼11> 콩글리시 예찬

콩글리시 예찬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포현하며, 의사소통을 위해 소리나 문자 따위로 표현하는 것을 언어라고 한다. 그 언어에는 모국어와 외국어 또는 외래어가 있다. 표준어와 방언으로 구분되기도 하고, 교양어와 속어로 구분되기도 한다. 시대에 따라 시대정신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시대를 풍자하기도 한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말 한마디가 설화(舌禍)가 되기도 한다.

필자가 취업 조건 즉 입학과 동시에 취업이 확정된 공업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취업처에서 파견된 많은 파견교사(물론 학생들은 일반 교사와 마찬가지로 그냥 ‘선생님’이라고 불렀다.)들께서 “너희들이 취업하게 되면 작업 현장에서는 일본어를 많이 만나게 될 거다.”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왜 아직도 우리말 대신 일본말을 사용하지? 하며 이해가 안 되었다.

실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첫 발령을 받은 지방의 건설 현장에서 일본어를 만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갓 고졸 출신인 나보다 스무 살 정도는 더 되어 보이는 작업반장께서 ‘감독님? 아시바가 부족해요’라고 말씀하신다. 아! 이게 현실이구나. 현장에서는 일본말이 사용되는 현실…. 잠시의 망설임과 함께 나는 작업반장님께 아주 공손하면서도 예를 갖추어 말씀드렸다. “반장님, 저는 아직 어려서 일본말 몰라요. 우리말로 해주시면 안될까요?”하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반장님은 아주 유쾌하고도 다정한 표현으로 마치 막내 동생 대하듯 ”아하, 감독님은 아직 어려서 작업 용어를 모르시는구나. 아시바는 <발판볼트>입니다. 감독님, 발판볼트 몇 개만 더 주세요.” 하셨다. 이렇게 해서 나는 작업 현장에서 일본어를 몰라도 현장 감독을 해낼 수 있었다. 이미 40년보다도 더 이전의 이야기다.

일상생활 혹은 각종 매체의 우리말 속에는 외국어 혹은 외래어가 난무한다. 외국어나 외래어는 영어도 있고 일본어도 많다. 요즘 급증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운 경우가 한국어에 외래어가 너무 많아서라고 한다, 왜 한국 사람들은 외국어에 민감할까? 한글 창제의 이유가 권력이 된 한자를 사용하지 못하는 일반 백성을 위한 것이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어가 권력이었으며, 해방 이후 지금까지 영어는 곧 절대권력이 되었다. 영어를 잘해야 유능한 사람 대접을 받는다. 대입에서도 한때는 영어특기자를 많은 대학에서 수백 명씩 선발하기도 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는데, 한국에 온 미국인은 한국말 못해도 된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인에게 영어로 접근하고 영어만 해도 불평은커녕 융숭한 대접을 해준다. 굳이 우리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오만방자해도 별문제가 안 된다. 영어라는 절대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일반인들조차 굳이 영어가 아닌 우리말을 해도 될 때 영어로 표현을 하고 싶어한다. 그러면 유식해 보인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용하는 영어가 실은 영어가 아닌 영어인 줄 착각하고 쓰는 한국식 영어 즉 콩글리시가 되는 것이다.

콩글리시 중에는 실제로는 콩글리시가 아닌 일본식 영어인 재플리시(Japlish)인 경우가 있다. 개인적으로 수치스러울 정도로 나쁜 사례다. 우리나라의 경우 콩글리시는 (필자 개인적인 의견으로) 유식한 체하기에 좋은 표현을 영어로 착각하여 사용하는 것이라면, 일본식 영어인 재플리시는 대부분 일본인의 발음의 한계 때문이다. 즉 일본어에는 발음상 종성 발음을 할 수가 없다. 즉 텔레비전(television)을 발음하려면 <테레비젼누>라고 해야 하는데 너무 길다. 그래서 <테레비>라고 줄여서 발음하는 것이다. 자동차의 후진을 안내하기 위해 백(back)을 발음하려면 <백>의 종성인 <ㄱ>을 발음할 수가 없어서 <빠꾸>라고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좋아의 의미인 <all right>의 <올>발음 중 <ㄹ>을 발음할 수 없어서 <오라이>라고 하는 것이다. 맥도날드는 <매끄도나르도>라고 하는 발음이 일본식 영어다. 훌륭한 종성 발음이 가능한 한국인이 발음 기능이 약한 일본인의 발음을 따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콩글리시의 부정적인 면도 부정할 수 없으나 영어의 cell phone을 뜻하는 <핸드폰>, laptop computer를 뜻하는 <노트북>, 기상 알림(wake-up phone call)을 의미하는 <모닝콜> 같은 경우는 beautiful Korean English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가 유학 중 미국인에게 이런 콩글리시를 소개하면 <so cute> 혹은 <so beautiful words> 등의 말로 엄지척을 했다. 콩글리시가 한국식(Korean) 영어(English)일 뿐 부끄러워할 단어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인의 창의적 사고로 영어식 표현보다 더 생활적이고 활용하기에 유용하다면, 오래지 않아 정통 영어를 한국식 영어인 beautiful 콩글리시가 대체할 날도 맞이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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