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코(琵琶湖)] 호수는 일본에서 가장 큰 담수호로 그 드넓은 풍경이 사람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호숫가에 서 있을 때, 마주한 것은 단순한 자연의 아름다움만이 아니었습니다. 제43회 재일본교육연구대회가 열린 그곳은 일본에서의 한국인 민족교육의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동시에 깊은 역사의 상처와 교훈을 되새기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 교육연구대회는 일본에서의 민족교육 관계자들이(보통 300여 명 이상 참여) 한 자리에 모여 우리의 교육적 사명을 다시 다지는 중요한 행사입니다. 하지만 대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나는 교육적 논의를 넘어 더 큰 역사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찾았습니다. 교토에서 불과 40분 거리에 있는 그곳에서 나는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와 마주했습니다.

코무덤: 잊히지 말아야 할 비극의 흔적
이른바 ‘귀무덤’으로 알려진 그곳은 사실 ‘코무덤’이었습니다. [토요토미히데요시]가 정유재란 당시 수많은 조선인들의 코를 잘라 일본으로 가져오게 했다는 기록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 무덤에는 5만여 명의 조선인들 코가 묻혀 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은 수가 희생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저 무덤이라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 공간은 우리에게 그 시대의 잔혹함과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고통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한때 거대한 봉분으로 조성되었지만, 현재는 초라하게 관리되고 있는 이 무덤을 보며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무덤은 큰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입구는 자물쇠로 잠겨 있어 분향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5만여 명의 영혼이 잠든 그 무덤 앞에서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슬픔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건너편 불과 20미터 거리에 [토요토미히데요시]를 기리는 신사가 화려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이토록 가까이 존재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그 자체로 역사의 부조리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화려하게 보존된 신사와 대비되는 코무덤의 초라한 상태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역사를 잊을 수 있는지를 상기시켜 주며 되풀이 하지 말아야겠다는 무거움을 안겨줍니다.

노예로 팔려간 조선인들: 아픔을 견디며 살아남은 자들
정유재란 당시 [토요토미히데요시]는 조선인들을 모두 없애라는 극단적인 명령을 내렸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코를 잘라 가져오라는 그의 명령은 전쟁 후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증명서’로 활용되었고 그 수를 세어 기록했다고 합니다. 조선에서 끌려온 사람들 중에는 기술을 가진 이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도공들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들은 일본에 도자기 기술을 전파하며 생존했습니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일본 노예시장에서 거래된 조선인들의 값이 아프리카 노예에 비해 50분의 1에 불과했다는 믿기지 않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조선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끌려왔음을 의미하며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지를 상상할 수 있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노예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일본에 기술을 전파하며 일본 도자기 문화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핍박과 억압 속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후손들은 오늘날에도 일본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본 문화에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여전히 그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역사의 슬픔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강인한 정신을 상기시켜 줍니다.

장보고의 흔적과 위안
이 고통스러운 역사의 흔적들 속에서 나는 빛과도 같은 장보고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장보고는 일본에서 신사에 모셔져 재물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민족적 자긍심을 상징하는 인물로 일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코무덤 앞에서 느낀 분노와 슬픔은 가시지 않았지만 장보고와 같은 위대한 인물들의 흔적을 찾아보면서 그나마 작은 위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위안은 결코 우리가 잊어야 할 역사의 아픔을 지워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인물들이 남긴 유산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억압 속에서도 자긍심을 잃지 말고 우리 역사를 기억하며 살아가라는 메시지입니다.

잊을 수 없는 교훈
이번 연수여행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비와코 호숫가에서 시작된 길은 우리 민족의 아픔과 고통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역사의 흔적은 우리가 쉽게 잊을 수 없는 것이며, 잊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일본 내 조선인의 흔적들은 단지 과거의 유물로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교훈을 주는 중요한 역사적 자산입니다.

역사는 현재의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 과거의 아픔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비와코 호수의 물결처럼 우리의 역사는 끊임없이 흐르며 새로운 세대를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이 여행을 통해 우리가 다시 한번 우리 민족의 아픔을 되새기며 그 아픔을 교훈 삼아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가슴시리게 느겼습니다. 비록 그 발걸음은 무겁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더 강한 미래를 향해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그러나 잊히고 있는 역사의 흔적을 가슴 깊이 새기며 비와코의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