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도래인 뿌리 서린 나라, 한일 정상외교 무대가 되다

방일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 총리 다카이치의 초청으로 그의 고향인 나라(奈良)를 방문했다. 나라는 일본 고대 국가 형성의 중심지이자,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이 일본 문명의 기틀을 세운 상징적 공간이다.

나라는 한반도 도래인들이 선진 문물과 기술을 전수하며 미개지에 가까웠던 지역을 국가의 중심지로 끌어올린 곳으로 평가된다. 백제 왕인 박사, 혜총 스님을 비롯한 수많은 인물들이 학술과 문필, 군사, 기악, 농업기술, 양잠, 토목, 관개, 금속 기술 등을 전하며 일본 고대 사회의 발전을 이끌었다.

일본에서 백제를 ‘쿠다라’라고 부르는 명칭도 고대 일본인들이 백제를 ‘큰 나라’로 인식한 데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도래인들이 국가의 기초를 닦았기에 수도의 이름 역시 ‘나라’로 불리게 됐고, 이 명칭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리의 초청으로 호류지를 찾았다. 그러나 나라에는 도다이지와 긴테쓰 나라역 앞에 세워진 교기(行基, 668~749) 스님의 동상처럼 도래인의 역사와 깊게 연결된 장소들도 남아 있다.

교기 스님은 한반도 도래인의 후손으로, 백제에서 건너간 고시 또는 다카시 수다토모의 장남으로 가와치국 오도리군, 현재의 오사카부 사카이시 일대에서 태어났다. 현대적 표현으로 보면 재일동포 2세에 해당한다.

교기 스님은 민중을 끌어당기는 힘으로 전국을 돌며 불교를 전파하고 사찰 건립과 사회사업에 힘썼다. 『속일본기』에는 그의 말 한마디가 왕의 칙령 백 번보다 효과가 컸다고 기록돼 있다. 헤이조쿄 동쪽 구릉에서는 수천 명, 많을 때는 1만 명이 모여 그의 설법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인기가 지나치게 커지자 겐쇼 여왕은 그가 민심을 선동해 왕실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투옥했으나, 민중의 거센 반발로 곧 석방됐다. 이후 쇼무왕은 교기의 영향력을 국가 사업에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740년 쇼무왕은 도다이지와 대불 건립이라는 국가적 대역사를 추진하며 교기 스님의 협조를 요청했다. 교기는 이 사업이 불교와 국가 모두에 이롭다고 판단해 전국을 돌며 시주를 모아 공사에 힘을 보탰다.

745년 교기 스님은 일본 최초의 대승정에 임명됐다. 이는 불교계 최고 직위로, 쇼무왕이 그를 위해 처음 만든 자리였다. 교기는 대불 조성이 한창이던 749년, 기코우지에서 81세의 나이로 입적했다.

조정은 그에게 ‘보살’이라는 시호를 내려 ‘교기보살’이라 불렀고, 그는 문수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았다. 교기보살은 752년 도다이지 대불 개안공양에서 의식을 주재하는 도시 역할을 맡았다. 백제계 도래인의 후손 가운데 보살로 추앙된 인물은 교기가 유일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나라 방문은 단순한 외교 일정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나라는 한반도 도래인의 역사와 일본 고대 국가 형성이 만나는 지점이며, 한일 관계의 깊은 뿌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댓글 남기기

EduKorea News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