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위대함인가’—권도형의 몰락이 비추는 한국식 성공주의의 그림자

“어머니는 내가 무엇을 위해 위대해져야 하는지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다만 위대함 그 자체를 원하셨다.”

미국 법원에 제출된 권도형 전 테라폼랩스 대표의 반성문에 담긴 이 문장은, 59조 원대 붕괴로 귀결된 한 천재의 파멸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압축한다. 징역 15년 선고로 마침표를 찍은 그의 추락은 단순한 알고리즘 실패가 아니라, 내용 없는 ‘1등’만을 강요해온 사회와 왜곡된 교육 욕망이 결합한 결과였다.

권도형은 대원외고와 스탠퍼드를 거쳐 실리콘밸리의 ‘빠른 실패와 큰 성공’ 서사를 흡수했다. 그러나 그가 만든 테라는 실체적 담보 없이 알고리즘의 외피로 포장된 구조였다. 연 20% 수익을 내세운 앵커 프로토콜은 지속 가능한 금융이 아니라, 더 큰 자금을 끌어들이는 전형적 폰지 장치였다. 성은 높았지만 기초는 없었다.

성장 서사에서 반복되는 장면은 하버드 낙방 소식에 눈물을 흘렸다는 어머니의 일화다. 그 눈물은 자녀의 좌절에 대한 공감이라기보다, ‘가장 크고 멋진 것’을 쟁취하지 못한 데 대한 좌절로 읽힌다. 여기서 위대함은 가치와 철학이 제거된 채, 남들보다 우위에 서는 외형적 성취로 축소된다.

큰 것, 최고, 장대한 것을 위대함으로 오인하는 순간 오만과 편견이 자라난다. 비대해진 자아는 밀납으로 봉한 날개를 달고 태양을 향해 오르지만,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추락한다. 추락의 공통점은 날개가 가짜였다는 사실이다. 태양이 아니어도 결과는 같았다.

이 환경에서 길러진 그는 스스로를 ‘고도로 기능적인 존재’로 규정했다. 공감과 책임이라는 소프트웨어 없이, 승리라는 목적지를 향해 가장 빠른 연산만 수행하는 인간 컴퓨터였다. 가상화폐 시장은 ‘내용 없는 위대함’을 증명하기에 최적의 전장이었다. “가난한 자들과는 대화하지 않는다”는 언사는 혁신의 언어가 아니라 우월감의 과시였다. 성이 무너질 때, 전 세계 수많은 서민의 삶이 함께 파괴됐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천재성을 변명으로 포장했다.

이 사례가 던지는 질문은 무겁다. 우리 사회가 말하는 위대함은 무엇인가. 목적과 철학이 결여된 성공, 도덕이 거세된 1등은 결국 타인의 고통 위에 세워진 신기루다. 흘렸어야 할 눈물은 합격 통지서 앞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한 괴물이 자라고 있다는 자각의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권도형의 판결은 개인에 대한 단죄를 넘어선다. ‘무엇을 위한 위대함인가’를 묻지 않고 오직 ‘최고’만을 숭배해온 학부모의 욕망과, 이를 로봇처럼 수행해온 자녀의 맹목적 성공주의에 대한 심판이다. 이 추락은 특정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한국식 엘리트 교육이 길러낸 구조적 실패의 경고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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