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조선 시대 수도 한양의 흔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도시다. 그 중심에는 한양도성, 즉 서울 성곽이 있다. 1396년 태조 이성계가 축조를 명한 이 성곽은 백악·낙산·남산·인왕산을 잇는 약 18km 구간으로, 도성을 방어하고 왕조의 권위를 상징했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성곽은 무참히 훼손됐다. 일제강점기에는 도시 확장을 명분으로 헐려 나갔고, 해방 이후에도 도로 건설과 개발 논리에 밀려 사라졌다. 현재 온전히 남아 있는 구간은 약 12km에 불과하다.
최근 서울시는 성곽을 단순한 유적이 아닌 역사문화 자산으로 되살리기 위해 복원·정비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창의문과 숭례문, 흥인지문 등 4대문과 북악산·낙산 구간은 시민들이 직접 걸을 수 있는 탐방로로 조성돼 큰 호응을 얻고 있다. 2012년에는 ‘서울 한양도성’이 국가사적 제10호로 지정됐고,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그러나 성곽의 미래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복원 구간마다 현대 건물과의 충돌이 불가피해 일부는 원형 보존이 어렵고, 훼손 흔적도 뚜렷하다. 또 관광 자원화 과정에서 지나친 상업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도시 개발과 유적 보존을 조화롭게 이어가야만 성곽의 가치를 온전히 살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 성곽은 단순한 돌담이 아니다. 600년 역사를 품은 채 도시 한가운데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그 현주소는 ‘보존과 개발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성곽을 과거의 유물이 아닌 서울의 미래 정체성을 담아낼 자산으로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