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제도, 낙인의 굴레를 넘어…장발장이 던지는 한국 사회의 화두

빅토르 위고의 소설 속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쳤다는 이유로 가혹한 형벌을 받고, 출소 후에도 전과자라는 낙인 때문에 사회로부터 철저히 배제된다. 그러나 주교의 용서를 계기로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며 새로운 길을 찾는다. 19세기 프랑스의 이 이야기는 21세기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울림을 준다.

최근 전북 완주에서 한 노동자가 물류창고에서 1050원짜리 초코파이와 커스터드를 훔쳐 먹었다가 벌금 5만원을 선고받은 사건이 ‘장발장 재판’이라 불리며 논란이 됐다. 항소심을 앞두고 검찰이 시민위원회 개최를 검토하는 상황까지 이어진 것은, 법과 정의가 현실의 맥락을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장발장의 사례는 단순한 절도가 아니라 절박한 빈곤이 낳은 범죄였다. 한국에서도 생계형 범죄가 반복되는 이유는 구조적 빈곤과 불안정한 사회 안전망에 있다. 복지정책과 지역사회 돌봄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현대판 장발장’은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교훈은 낙인 문제다. 장발장은 출소 후 일자리와 숙소를 얻지 못했지만, 이는 오늘날 재소자·노숙인·이주민 등 취약 계층이 겪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처벌 이후 사회 복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면, 형벌은 교정이 아니라 배제의 도구로 남는다.

주교의 용서가 장발장을 변화시킨 것처럼,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는 단순 응징을 넘어 사회적 치유와 통합을 가능하게 한다. 피해자·가해자·공동체가 함께 회복을 모색하는 방식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장발장의 이야기는 결국 ‘범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우리는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법과 제도의 엄정함 속에서도 인간 존엄과 사회적 연대의 가치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장발장이 오늘의 우리에게 남긴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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