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하늘이 가르쳐 준 인생의 길

아침을 뚫고 달리던 출근길, 문득 어린 시절 고향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책가방 없는 날로 시행되었던 체험학습의 날, 학교 교실 안에서 배웠던 지식도 소중했지만 내 마음 깊숙이 남아 있는 배움은 고향의 산과 들판 그리고 하늘과 바람 속에서 얻은 체험이었습니다. 어릴 적 고향의 자연은 그 자체가 살아 있는 교과서였습니다. 운동장에 수북이 쌓인 노란 은행잎과 누렇게 떨어진 프라타너스 잎을 긁어모아 불을 지피면 우리는 과학책에서 배우지 못한 자연의 원리를 몸으로 느낍니다. 차가웠던 아침 공기가 불꽃의 온기에 물러나던 그 순간은 삶의 추위도 따뜻한 나눔으로 녹일 수 있음을 알려준 첫 경험이었습니다. 고향의 하늘에서 불던 맑은 바람은 그냥 시원한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매연 가득한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투명한 숨결로 혼탁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 주는 청량제였습니다. 어린 시절 고향 들판에서 맞던 그 바람의 기억은 성인이 된 지금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지쳐갈 때마다 정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고향의 체험은 늘 자연과 함께였습니다. 추수를 끝낸 황량한 논바닥은 ‘풍요 뒤에는 공허가 찾아온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김장배추와 무가 듬성듬성 힘겹게 남아 있는 산등성이 비탈진 밭의 모습은 ‘작은 생명도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빈집 너머 나무 사이로 보이던 석양, 가지 끝에 매달린 빨간 홍시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빛과 따뜻함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위수천(낙동강 지류) 강가의 갈대숲은 나이게 특히 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갈대의 모습에서 인생의 풍파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내야 힘을 배웠습니다. 그 옆에서 평화롭게 둥지를 틀던 백로는 떠남과 돌아옴 속에 삶의 순환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눈감으면 떠 오르는 어린 시절 고향의 그 풍경은 당시는 그냥 놀이터였지만 어른이 된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인생의 길을 가르쳐 준 살아 있는 배움터였습니다.

오늘날 교육은 지식 전달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가는 힘은 책 속의 글자에서만 나오지 않습니다. 고향에서 몸으로 겪었던 체험학습, 낙엽을 태우며 느낀 따뜻함,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유연함, 홍시 너머 노을의 그리움…. 이것은 나를 단단하게 지탱해 준 삶의 자산이었던 것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같은 세상일지라도 어린 시절 고향에서 배운 삶의 지혜는 길을 잃지 않게 해 주는 등불입니다. 그래서 나는 믿습니다. 어린 시절 자연과 함께 했던 고향의 체험은 그냥 유년기의 추억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지혜와 용기를 심어 준 값진 배움이었다는 것을. 깡촌 시골 고향은 내 삶의 첫 배움터이자 영원한 스승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 자연에서 배운 작은 체험 하나하나가 오늘의 나를 만들고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되어 주고 있다는 것을.

눈감으면 떠 오르는 고향의 노을은 유난히 아름답습니다. 지금은 빈집이 늘어나고 허물어져 가는 담장이 늘어났지만 가지 끝에 매달린 홍시 너머로 보이는 붉은 석양은 결코 빛을 잃지 않을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저녁 하늘이 아니라 떠나온 이들에게 전하는 고향의 손 편지이자 다시 돌아오라는 무언의 부름이니까요. 이때쯤이면 위수천 너머 펼쳐진 갈대숲은 계절의 속도를 더해갑니다. 바람결에 살랑이던 하얀 갈대 사이로 백로가 둥지를 틀고 그 사이를 스치는 바람은 가을의 그림자를 몰고 옵니다. 갈대의 흔들림 속에서 덧없음을 느끼지만 동시에 다시 피어날 새봄을 예감할 수 있습니다. 고향은 늘 이렇게 묵묵히 나의 뒤를 지켜 주고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사는 도시의 삶이 아무리 삭막하고 치열해도 고향의 하늘과 바람 그리고 노을과 강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나를 기다릴 것입니다. 그래서 고향은 내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돌아가야 할 내면의 안식처이자 잊혀지지 않는 영원한 그리움인가 봅니다. 오늘도 아침 출근길을 달리다 문득 스치는 고향의 바람을 떠올리며 다짐해 봅니다. 언젠가 그 고향 하늘 아래 다시 서서 노을을 바라보며 그리움이 아니라 감사로 눈시울을 적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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