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6월 16일, 미국 일리노이주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온 36톤 덤프트럭과 충돌하며 세상을 떠난 한국의 천재 물리학자 이휘소(1935~1977) 박사.
이휘소 박사는 1935년 1월 1일, 일제강점기 경성부 원정(현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의사였으며, 특히 모친 박순희가 병원을 운영하며 가족 생계를 책임졌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학문적 재능을 보였던 그는 경성사범학교 부속 제1국민학교를 거쳐 경기중학교에 진학했다.
그의 천재성은 이론물리학 분야에서 빛을 발했다. 특히 20세기 후반 입자물리학의 난제였던 ‘자발적으로 대칭성이 부서진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 문제’를 해결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맵시 쿼크의 존재와 질량을 예측하여 소립자 연구에 획기적 공헌을 했고, 110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물리학 발전에 기여했다. 현재까지 그의 논문들은 총 16,416회 인용되었으며, 그의 연구가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아 ‘노벨상 메이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사고의 의혹은 아직까지 명쾌히 해소되지 않았다. 1974년, 이휘소가 20여 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던 시기가 공교롭게도 박정희 정권의 핵개발 프로젝트 ‘890계획’이 진행되던 때라는 점이 의혹을 불러왔다.
그러나 이휘소 박사의 실제 삶과 업적은 그 자체로 이미 특별하다. 어려운 시절을 딛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세계 최고의 이론물리학자로 자리 잡은 그의 삶은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다. 특히 2012년 발견된 힉스 입자의 명칭을 지은 인물이 바로 이휘소 박사였다는 사실은 그의 학문적 위상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