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경기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고의사구는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 중 하나로 꼽힌다. 공격을 받아야 할 투수가 오히려 타자를 1루로 보내는 상황은 직관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는 야구만의 독특한 전술 중 하나다. 상대 타자의 강타 능력을 인정하고, 보다 나은 승부를 위해 일부러 피하는 계산된 전략이다.
고의사구는 일반적으로 홈런타자와 같은 강타자에게 집중된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배리 본즈가 통산 668개의 고의사구를 기록해 역대 최다를 기록했고, 일본에서는 왕정치가 427개로 정상을 차지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양준혁이 통산 150개로 가장 많은 고의사구를 기록했다. 이처럼 각국 리그의 고의사구 1위는 대부분 최고의 타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 고의사구는 영어 ‘intentional walk’ 또는 ‘intentional base on balls(IBB)’에서 비롯된 일본식 번역이다. 타자에게 의도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공 4개를 던져 1루로 진루시키는 방식이다. 다만 2018년부터는 메이저리그를 시작으로 감독이 심판에게 고의사구를 지시하면 공을 던지지 않고도 자동으로 1루를 허용하는 룰이 도입되었다.
한편 과거 일본야구에서는 고의사구를 ‘경원사구(敬遠四球)’ 또는 줄여서 ‘경원(敬遠)’이라고 불렀다. 이 단어는 단순한 스포츠 용어가 아니라 동아시아 유교 문화에서 비롯된 문학적 표현이다. 공자가 『논어』에서 언급한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敬鬼神而遠之)’는 구절에서 유래했으며, 조선시대에도 간혹 사용되던 말이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82권에는 “귀신을 경원해야 한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경원은 곧 ‘존중은 하되 거리 두기’라는 의미로, 고의사구의 취지를 고풍스럽게 풀어낸 말이다.
이 같은 ‘경원사구’는 한동안 한국 야구에서도 널리 쓰였지만, 50대 이하 세대가 한글 표기 중심으로 교육받으며 ‘고의사구’로 용어가 통일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야구 원로들과 중장년 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경원’이라는 표현이 익숙하게 사용되고 있다.
결국 ‘고의사구’와 ‘경원사구’는 같은 현상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일 뿐이다. 하나는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용어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과 문학적 배경을 담은 표현이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단어는 변하지만, 그 안에 담긴 전략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