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영칼럼03> 환난 중에 감사하라

환난 중에 감사하라

성경에 환난 중에 즐거워하라.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한다는 말씀이 있다. 지금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은 어쩌면 궤변처럼 들릴 수도 있다. 본인도 솔직히 환난 중에 감사하라는 말은 가능하나, 즐거워하라는 말은 못 하겠다.

본인을 잘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꽤 많은 사람들이 ‘경영이 네가 공고를 안 가고 인문계 고교를 갔으면 어땠을까? 하고 연민의 정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때 나는 본능적으로 대답한다. Who knows?라고.

역사에 가정이 필요 없듯이 개인의 인생사도 가정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공부하거나 개인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교훈을 삼기 위함이다. 개인사에 있어서 실패 그 자체는 나쁜 것이나, 실패라는 경험이 교훈이 된다면 곧 희망이 되는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본인에게 있어서 환난은 실패라는 말과 오버랩될 때가 많다. 중학교 시절, 먹고 살기도 어려웠던 당시의 시골 환경으로 인해 인문계 고교에 입학할 형편이 못 되었기에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서 일할 용기가 없음을 알고 코피 터지게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시골에서 탈출했다. 3년간 먹고 자고 입고 신고 공부하는 것까지 다 무상으로 제공되는 요즘으로 말하면 풀 스칼러십이 있는 공업계 고등학교인 수도공고였다. 한전의 기술 사관학교라는 기치로 출범하는 학교로, 학교장 추천을 받아야 했기에 교무실에서는 술렁임이 있었다. 명색이 전교 1등(평생에 딱 한 번! ^^)을 한 학생이 인문계가 아닌 공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한다는 걸 이해할 수 없던 선생님들이 공고를 가지 말고 인문계 가서 공대에 가라고 하신다. 집이 어려워서 그러니? 라고 하시면서. 어린 나이였지만, 그렇다고 하면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것 같아 그냥 제가 좋아서라고 했다.

그렇게 진학한 공업계 고등학교는 실습 위주의 커리큘럼으로 인해 손재주가 없는 학생은 수업 단위가 20단위가 되는 실습에서 ’우‘(당시에는 수우미양가로 평가했음)를 맞는 순간 학급에서 20등 밖으로 밀려난다. 기숙사의 환경(군대와 같은 내무반이었음 ㅠㅠ)으로 인해 11시면 소등을 한다. 기숙사 밖 가로등 밑에서도 해보고 기숙사 이불 속에 숨어서 전등 빛으로도 공부를 해보았지만, 성적은 향상되지 않았다. 그렇게 전교 1등 출신이 학급에서 중위권으로 밀려나는 처참한 무력감을 느껴보았다.

졸업생 전원이 의무 입사를 해야 하는 구조 속에 전원이 지방 발령을 받았고, 3년 만에 서울로 발령을 받아 본격적으로 대입 준비를 했다. 그러나 학교의 취업 중심 교육으로 인해 국영수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직장도 교대 근무를 하다 보니 학원 수업도 3일 중 2일만 수강할 수 있는 안타까운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이 있었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대입이 끝나고 나니 몸무게는 13kg이나 빠졌다. 다이어트라고 하기엔 너무나 허약해진 신체로 인해 건강을 회복하는 데 아주 오랜 기간이 걸렸다.

그렇게 해서 좋아하는 영어를 전공하니 직장과 병행하는 강행군이었음에도 행복했다. 그런데, 한전을 그만두고 학교로 가면 급여가 60% 정도로 다운이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혼도 한 상태였기에 아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H 공대 전기과에 학사 편입을 했다. 전기와 영어를 동시에 전공하면 직장에서도 아주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1달도 되지 않아 그 기대는 실패로 끝났다. 수학이 발목을 잡았다. 1학년도 아닌 3학년의 공대 수학은 공고 졸업생에게는 벅찼다. 역시 전기는 나의 길이 아니구나 하고, 자퇴를 하였다.

그때 본인이 공대에서 실패를 하지 않고 버텼으면 어찌 되었을까? 전기엔지니어로서 11년의 한전 생활을 마치고 교사로서의 첫 1년만에 새로운 직장인 교사로서의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되었다. 적성에 맞지 않았어도 그 험난한 여정을 이겨냈기에 한전이라는 직장에 취업이 가능했고, 공대생을 포기하는 실패를 경험했기에 교사로서 행복한 길을 갈 수 있었다면 나에게 있어서 환난과 실패는 결국 행복을 열어주는 징검다리였던 것이다. 그 아픈 과정이 없었다면 그간의 여정을 감사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다.

직장 혹은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적어도 직업은 본인이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일이여야 한다는 것을 평생에 걸쳐 체험하고 있다. 그래서 한전 11년에 이은 22년의 영어교사 생활을 마감하고 진로교사로서의 11년은 학생들에게 직업 선택에 관한 실증적 체험을 증거로 이야기하니 상담 재료로서의 나의 삶이 감사할 따름이다.

입시컨설팅전문가로 인생2모작을 하는 명강사 정경영 선생님

그렇게 11년의 한전 생활과 22년의 영어교사, 그리고 11년의 진로교사로 정년 퇴직을 하였는데, 첫 직장인 한전의 경력과 두 번째 직업인 영어교사로서의 경력이 콜라보가 되어 지금 국제개발협력사업(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의 일환으로 온두라스 배전설비 개선공사의 실무자로 출장 길에 올랐다. 인생은 회기의 역사일까? What an amazing coincidence it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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