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1815년 빈 회의에서 ‘영세중립국’으로 승인받은 이후 200년 넘게 중립 지위를 유지해왔다. 영세중립이란 특정 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다른 나라와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다는 국제법적 지위를 뜻한다. 스위스는 이를 위해 의무적으로 자국의 영토를 지키는 방어적 군사력만 유지해 왔고, 제1차·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참전을 피했다.
스위스의 중립은 단순히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적극적 중재자 역할로 이어졌다. 제네바에는 국제연합(UN) 유럽본부, 세계보건기구(WHO), 국제노동기구(ILO) 등 200여 개 국제기구가 자리하고 있다. 국제분쟁 중재와 인도적 지원을 담당하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본부도 제네바에 위치해, 스위스가 ‘세계 외교의 무대’로 불리는 이유가 됐다.
스위스의 중립은 헌법에도 명시돼 있으며, 국민의 합의와 자율적 국방에 기반을 둔다. 모든 남성에게 병역 의무가 부과되는 것도 ‘방어적 중립’을 지키기 위한 장치다. 중립국임에도 불구하고 스위스는 첨단 무기를 보유하고 알프스 산악 지형을 활용한 요새화 전략으로 강력한 자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스위스의 중립은 도전에 직면하기도 했다. 2002년 유엔에 가입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게 되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면서 ‘절대적 중립’이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럼에도 스위스 정부는 “중립은 국제법적 지위이자 국가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강조하며 전통적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스위스의 영세중립은 단순히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국제 분쟁을 중재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외교적 자산으로 기능해왔다. 오늘날에도 스위스는 중립을 기반으로 세계 외교 무대에서 균형추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