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상납을 ‘트러블’로 포장하는 일본의 ‘미화’ 문화, 그 이면을 보다

people walking on the street

최근 일본 연예계에서는 자국 대형 기획사 ‘자니즈’의 전 회장으로부터 비롯된 성추행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전설적 아이돌 그룹 ‘스마프(SMAP)’ 소속 멤버들의 권력 관계와 관련해, 해당 기획사의 권위에 기대어 여성 아나운서들을 성상납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뒤늦게나마 언론에 포착되면서 사회적 충격이 커졌다.
놀라운 점은 이를 대하는 일본 언론과 일부 여론의 태도다. 엄연히 ‘성상납’이자 ‘성폭력’으로 정의될 수 있는 심각한 사건마저, 일본 내에서는 그저 ‘트러블(trouble)’이라는 단어로 완곡하게 불리고 있다.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 명백한 범죄를 단순 ‘갈등’ 정도로 치부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 특유의 ‘미화(美化)’ 문화가 여과 없이 드러난 예라 할 수 있다.

일본에는 타인을 향한 섬세한 배려와 예의가 일상 깊숙이 배어 있다. 동시에, 전국적으로 자연재해가 잦아 서로를 돕고 단결해야 하는 환경적 요인이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왔다. 그 과정에서 개인이 처한 고독을 묵묵히 견디고 감추는 성향 역시 형성됐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문화적 특성이 사건·사고에 직면했을 때 이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보다, ‘예쁘게 감싸는’ 쪽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보다는 에둘러 표현하고, 파급력을 최소화하며, 갈등 자체를 축소 또는 희석하는 식이다.

자니즈 기획사의 성추행 문제는 이미 고인이 된 창립자의 권력형 성범죄였고, 이번에 새롭게 드러난 사례 또한 연예계 내부에서 벌어진 명백한 권력 남용이다. 거액의 합의금을 받고 사건을 ‘종결’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는 성적으로 왜곡되고, 사회적 공론화마저 길을 잃게 된다. 놀랍게도 일본 내 일부 매체와 대중은 이 사건을 두고 ‘사소한 갈등’ 혹은 ‘유감스러운 해프닝’ 정도로 받아들인다. 물론 최근에는 SNS 등을 통해 작지 않은 비판 여론이 형성되고 있지만, 여전히 주류 언론 보도는 중립적·우회적 표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과거 ‘위안부’ 문제나 전쟁 책임 등 역사적 논란에서도 반복적으로 보였던, 불편한 진실을 미화·은폐하는 방식과 맥이 닿아 있다.

일본의 ‘미화’ 문화는 부정적인 면을 에둘러 숨기는 동시에, 타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치밀한 준비성 같은 긍정적인 특징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 두 측면을 분리해 단정적으로 비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성상납’을 ‘트러블’로 돌려버리는 언어적 완곡함은 엄연히 범죄 피해를 축소하고, 가해 권력을 유지시키는 데 기여한다. 나아가 우리가 일본 사회를 바라볼 때, 이러한 ‘미화’가 역사적·문화적 과오를 덮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한 나라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문화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일본이 가진 섬세함과 서로 돕는 문화에는 분명 배울 점이 많다. 동시에, 분명한 잘못조차 ‘미화’로 은유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은 비판적으로 바라볼 지점이다. 진실은 미화될수록 더 큰 왜곡과 갈등을 낳을 뿐이라는 점을, 역사는 늘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회를 평가함에 있어 외국인으로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적 차이를 직시하고, 잘못된 점에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 역시 국제적인 소통과 성장을 위해 필수적이다. 일본 내부에서도 이러한 목소리가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사건과 역사를 성실히 마주하는 성찰의 과정이 함께 이뤄지길 기대한다.

송원서 (Ph.D.)
일본 슈메이대학교 학교교사학부 전임강사
와세다대학교 교육학부 비상근강사
동경대학교 공간정보과학연구센터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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