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등교육의 상징 도쿄대학이 구조적 전환의 기로에 섰다. 2025년 발표된 영국 『타임즈 고등교육』 세계대학순위에서 도쿄대는 28위로 밀려났으며, 이는 2011년 20위권 초반을 유지하던 시절에 비하면 뚜렷한 하락세다. 평가 하락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경쟁 속 일본 고등교육 전반의 위기를 가시화하는 신호로 읽힌다.
문부과학성이 지난 6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세계 상위 10% 인용 논문 수 기준으로 13위에 머물렀다. 한때 세계 2위 수준의 기초연구 역량을 자랑하던 일본이 점차 영향력을 잃고 있다는 경고다. 이에 따라 도쿄대는 공학계 대학원 수업의 80%를 영어로 전환하겠다는 개혁안을 내놓았다. ‘급행 국제화’ 정책을 통해 글로벌 인재 유치와 연구 협력 확대를 노리는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언어 전환을 통한 국제화’라는 방향 자체가 자국 학문의 정체성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일본어 기반 학문 생태계는 일본의 역사적 축적과 독자적 사유의 토대였으며, 이를 단순히 글로벌 지표 개선을 위해 약화시킬 경우 ‘국제화’가 아닌 ‘국제화 콤플렉스’로 귀결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진정한 국제화는 영어 사용 여부가 아니라, 세계적 기준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연구의 질, 교육의 방식, 그리고 학문적 공공성에서의 혁신에 달렸다고 입을 모은다. 도쿄대가 단순한 지표 경쟁을 넘어 일본 지성의 존재 이유를 재정의하는 작업을 병행하지 않는다면, 이 개혁은 방향을 상실한 궤도 수정을 의미할 수 있다.
일본 고등교육이 직면한 오늘의 도전은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일본식 모델’을 확립하느냐에 달려 있다. 도쿄대의 선택은 단순한 내부 개편이 아니라, 일본 고등교육의 미래 좌표를 다시 그리는 중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